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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에도[江戶]시대의 세책집
江戶時代の貸本屋について
이윤석
연민학회 2012.02
연민학지 17권 193-221(29pages)
UCI I410-ECN-0102-2012-800-003260930

이 논문은 일본 에도[江戶]시대(이 아래에서는 에도시대라고 함) 카시혼야[貸本屋]에 대한 것이지만, 에도시대 세책집에 대해 특별히 새로운 사실을 밝혀낸 것은 아니다. 필자는, 이제까지 日本에서 세책집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고, 또 에도시대 세책집은 시기적으로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일본 연구자들의 글을 통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필자는 조선후기 서울에서 성행한 貰冊집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는데, 조선후기 貰冊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에 조선후기 세책집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 구체적인 실상을 파악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일본의 세책집에 대한 연구를 살펴봄으로써 조선후기 세책 연구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빌려주고 돈을 받는 영업을 貰冊業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영업형태는 과거 세계 여러 나라에 있었고, 현재도 이러한 영업형태가 있는 나라도 있다. 필자는 18∼9세기의 유럽, 일본, 조선 등에 세책집이 있었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들 여러 나라의 세책집의 양상을 연구해서 그 보편적 구조를 알아낼 수 있다면, 조선후기 세책집의 연구에 이 보편적 구조를 원용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세책집에 대한 연구는 어느 나라에서나 그렇게 중요한 연구분야는 아닌 것 같다. 대체로 도서관이나 독서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자신의 전문연구에 부수적으로 세책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그러나 문학작품이 어떤 경로를 통해 독자의 손에 들어가게 되는가 하는 것이 문학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주제가 된다면, 세책집에 대한 연구도 문학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본고는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에도시대 세책집에 대한 일본 연구자들의 연구성과를 정리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에도시대 세책집의 전개를 17세기, 18세기, 19세기로 나누어서 본 것이다.

本稿はおおむね二つに分けられる。一つは江戶時代の貸本屋に對する日本の硏究者の硏究成果を整理したもので、もう一つは、江戶時代の貸本屋の展開を17世紀、18世紀、19世紀に分けて考察してみたものである。貸本屋全體にわたる體系的な硏究は、廣庭基介の「江戶時代貸本屋略史」(1,2)『圖書館界』 18―5,6 (日本圖書館硏究會, 1967.1,3.)が最初であろう。この論文の參考文獻を見ると、それまでの日本の貸本屋の硏究の狀況をある程度察することができるが、貸本屋に關する專門的な硏究はほとんどなかったことがわかる。初期の貸本屋にかんする論文は、その全てが江戶時代の讀者の硏究の一部分である。現在、日本で江戶時代の貸本屋についてもっとも多くの硏究をなした學者は長友千代治であるが、彼は『近世貸本屋の硏究』(東京堂出版, 1982.5.)を出した後にも江戶の貸本屋について多く書いている。初期の貸本屋の硏究が讀者硏究の副産物であったのと同じく、江戶時代の後期の文學(特に出版と關聯された)を理解するための一つの方便として貸本屋に關する硏究が行われた。特に讀本を理解するために多くの硏究者たちが貸本屋について言及している。江戶時代の貸本屋についての硏究はだんだん專門化されて、文學史の中でもある程度の比重をも持つテ―マになった。江戶時代の貸本屋がいつから生まれたのかについて正確に知らされたものはないが、本が讀みたいという慾望はあっても、本を買える經濟力が足りない人がいる時、貸本屋が出現する客觀的な條件が形成されるのだといえよう。大部分の硏究者が元祿期(1688-1704)以前に貸本屋が出來たという推定をしているが、これについての明確な證據はない。貸本屋に對するいろいろな文獻的證據は18世紀から多く現われる。行商本屋が本を賣ったり貸したりする形態が、18世紀の中盤までの貸本の一般的な樣相である可能性が高い。18世紀の後半になると、貸本屋はその數と影響力とで無視できない存在になった。この時の貸本屋は單に本を貸すことだけではなくて、出版に關與するという、作者に影響力をあたえる段階にまでいたるようになった。19世紀は貸本屋がもっとも隆盛した時期で、貸本屋についての記錄も多い。19世紀の初の江戶には659人の貸本屋があっで、大阪には300人くらいの貸本屋があったのである。江戶時代の貸本屋についていう時、もっとも多く取り上げられるのは山東京傳の『雙蝶記』の序文である。京傳は、板元と讀者の間に本をつなぐ役割を貸本屋がしているとみなしている。馬琴の讀本の大部分は貸本屋を通じで讀まれた。そして馬琴自身も貸本屋の評判を氣にしなくてすますことはできなかった。明治13年以後には、新しい印刷方法である活版で印刷された本が廉價で普及されることによって、木版本とか寫本が入っている급のような長方形の風呂敷を背負って得意先を廻って本を貸していた貸本屋は、新しい時代にふさわしい新しい樣式の貸本屋に變っていく。江戶時代の貸本屋の發展は、整版印刷の發展とその軌をともにすることとみてさしつかえないだろう。江戶時代の初期の書籍は活字印刷であったが、多量の書籍を出版し始めるにつれて整版印刷に移って行く。18世紀の中盤以後、大衆文化が發展するによって整版印刷も極度に精巧な色刷りまでが可能になるが、貸本屋の最盛期もちょうどこの時期であった。貸本屋は江戶の大衆文化の尺度ともいえる。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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